
2026년 한국 산업계의 가장 뜨거운 법률 이슈 중 하나는 단연 하도급법입니다. 특히 대기업이 중소 협력사의 핵심 기술을 부당하게 탈취하는 '기술유용'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최근 주요 로펌이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법률 시장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제재 강화 기조와 맞물려, 이제는 과징금 수준을 넘어선 근본적인 해결책이 모색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과거의 제재가 이미 벌어진 피해에 대한 사후적 배상에 그쳤다면, 이제 논의의 초점은 피해 자체를 막는 '금지청구권'의 실효성 강화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기술유용 행위를 사전에 중단시킬 수 있는 이 강력한 법적 권리가 과연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선언적 규정에 그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2026년 하도급법의 향방은 단순히 기업 간의 분쟁을 넘어, 한국 경제의 혁신 생태계와 공정 경쟁의 미래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기술유용, 왜 다시 뜨거운 감자인가?
오랜 기간 하도급 관계의 고질병으로 지적되어 온 기술유용 문제가 2026년 들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단순히 법 개정 논의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술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 되면서, 기술 탈취가 한 기업의 존폐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법무법인 세종이 ‘2026년 기술유용, 금지청구권 등 하도급법 최신 동향 세미나’ 개최 소식을 알린 것은 이러한 시장의 관심을 방증합니다. 이는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 관련 분쟁이 증가하고, 기업들의 법적 대응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피땀 흘려 개발한 기술을 빼앗겨 성장의 동력을 잃고, 대기업은 단기적 이익을 얻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혁신의 싹을 자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정부와 입법부의 규제 강화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해 보입니다. 기술유용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책적 시그널이 명확해지면서, 기업들 역시 변화된 규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놓였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의 역사, 제재는 있었지만
물론 기술유용에 대한 제재가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공정위는 꾸준히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적발하고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해왔습니다. 2025년 9월, 공정위가 (주)정광테크의 기술자료 요구 및 유용행위를 제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부당하게 기술자료를 요구하고 이를 다른 사업자에게 전달한 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공정위의 전체 공정거래 과징금 규모는 강화되는 추세이지만, 유독 하도급법 위반, 특히 기술유용에 대한 과징금 수준은 피해 규모나 행위의 악성에 비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기술 탈취로 원사업자가 얻는 막대한 이익에 비해 과징금 액수가 턱없이 낮다 보니, 일부 기업에게는 제재가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적발될 경우의 과징금을 '사업상 비용' 정도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의 역사가 기술유용이라는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지 못하고 반복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칼날을 가는 공정위: 대금 지급부터 옥죈다
반복되는 비판 속에서 공정위 역시 칼을 갈고 있습니다. 특히 기술유용 문제에 직접 접근하기에 앞서, 하도급 거래 전반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띕니다. 2025년 10월 발표된 「하도급대금 지급안정성 강화 종합 대책」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대책은 단순히 대금을 제때 지급하라는 수준을 넘어, 원자재 가격 변동을 납품 단가에 반영하는 하도급대금 연동제 도입, 불공정 하도급 신고 활성화 등 구조적인 개선 방안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의 힘의 불균형을 완화하고,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 기술유용과 같은 불공정 행위가 발생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다각적인 접근법입니다.
최근 한화그룹 계열사에 대한 하도급 결제 점검 결과는 이러한 규제 강화 기조가 대기업에 미치는 실질적인 압박을 잘 보여줍니다. fetv.co.kr 보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오히려 대금을 초과 지급한 사례가 확인된 반면, 한화솔루션은 현금 결제 비율 측면에서 개선 과제가 지적되었습니다. 이는 이제 대기업들이 하도급 대금 지급 방식을 포함한 거래 관행 전반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무기, 금지청구권의 실효성 논란
이러한 규제 강화 흐름의 정점에는 '금지청구권'이 있습니다. 하도급법 제25조의3은 기술유용 행위로 인해 중대한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수급사업자가 법원에 해당 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손해가 발생한 뒤 돈으로 배상받는 것을 넘어, 아예 피해 발생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사전적 구제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유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려는 정황이 포착되면, 수급사업자는 법원에 해당 제품의 생산 및 판매를 중지시켜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미 시장에 제품이 풀리고 손해가 막심해진 뒤에 시작되는 지난한 손해배상 소송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실효성입니다. 법 조문은 존재하지만, 실제 소송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기술유용 행위를 입증하고 '중대한 손해의 우려'를 증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정보와 자금력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있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법정에서 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합니다. 2026년 하도급법 개정 논의의 핵심은 바로 이 금지청구권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고,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여 중소기업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기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원사업자의 시각
강화되는 규제 환경은 원사업자, 즉 대기업에게 새로운 수준의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를 요구합니다. 과거처럼 단순히 계약서 조항 몇 개를 추가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협력사로부터 기술자료를 제공받는 모든 과정에서 법적 리스크를 점검해야 합니다.
첫째, 기술자료 요구 절차를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하도급법은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요구 목적·비밀유지 사항 등을 명시한 서면으로만 자료를 요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두나 이메일로 무심코 자료를 요청하던 관행은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모든 요청은 명확한 법적 요건을 갖춘 서면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기록을 철저히 보관해야 합니다.
둘째, 내부 임직원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실무 담당자가 하도급법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연구개발 부서나 구매 부서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하도급법 교육을 시행하여, 기술유용의 법적 정의와 금지 행위 유형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합니다.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기회와 위기, 중소기업의 대응 전략
강화된 하도급법은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에게 분명한 기회입니다. 그러나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입니다. 원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제공할 때는 어떤 자료를, 어떤 목적으로, 언제 제공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서면을 반드시 주고받아야 합니다. 비밀유지계약(NDA) 체결은 기본입니다. 이메일, 회의록, 담당자 간 메신저 대화 등 모든 소통 내용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관하는 습관이 분쟁 발생 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술유용이 의심되는 즉시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기 단계에서 어떻게 증거를 확보하고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습니다. 금지청구권 행사는 타이밍이 생명입니다. 시간을 지체하다 증거가 사라지거나 원사업자가 제품 출시를 끝내버리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2026년 하도급법, 상생의 시험대가 될 것인가
2026년 하도급법을 둘러싼 변화의 바람은 거셉니다. 이는 단순히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을 넘어, 기술유용 행위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고 중소기업의 혁신을 보호하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금지청구권의 실효성 강화는 그 전환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물론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불공정 관행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제 기술유용은 기업의 평판과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리스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원사업자는 협력사를 단순한 비용 절감의 대상이 아닌, 함께 성장해야 할 혁신 파트너로 인식해야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전개는 한국 산업 생태계가 진정한 상생 협력의 모델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법의 칼날이 모두를 위한 공정한 운동장을 만드는 데 기여할지, 아니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지, 우리 모두가 지켜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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